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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14일차 - "나는 친구가 아니라 순례자다"

by AmosK 2025.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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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 순례길 1st

프랑스 길 [French Route] 16. April 2023

 

 

🍀 Day14.  Rabe des las Calzads → Castrojeriz, 27.3km
                   (French Route, 16. April 2023)

 

친구와 순례자, 그 미묘한 경계에서...

혼자 걷고 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며, 걷는 나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해보게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오늘, 14일째 아침. 라베 데 라스 칼사스(Rabe des las Calzads)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배낭을 메는 순간, 나는 여전히 '나를 찾는 여정'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목적지는 카스트로헤리츠(Castrojeriz), 거리는 27.3km. 숫자로는 평범한 하루지만, 이 길 위에서 만난 한 마디가 내 순례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는 친구(amigo)가 아니다. 나는 순례자(peregrino)다."

해 뜰 무렵 순례길 걷기

 

산티아고 순례길 14일차 - "나는 친구가 아니라 순례자다"

라베 데 라스 칼스 →  카스트로헤리스, 27.3km 여정


순례자를 만나다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뜨기 전 길을 나섰다. 산티아고 순례길 14일차, 이제 제법 몸도 적응했고 발도 길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마음은? 마음은 여전히 답을 찾고 있었다.

라베 데 라스 칼사스를 벗어나 한참을 걷다가,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한 순례자와 마주쳤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고,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이야기를 시도했다. 날씨, 길의 상태, 어제 머물렀던 알베르게에 대한 가벼운 대화들을 나눴다.

그때 그가 말했다.

"나는 친구가 아니다. 나는 순례자다."

순간 나는 멈춰 섰다.

 

산티아고 순례길

친구와 순례자, 무엇이 다른가?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이말은 무슨의미지? 친근하게 함께 걷는 동행을 거절하는 것일까?  그의 표정에는 적의가 없었다. 오히려 깊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계속 걸었고, 나는 그 한 마디를 곱씹으며 뒤를 따랐다.

친구(amigo)와 순례자(peregrino).

스페인어를 잘 모르는 나에게도 이 두 단어의 무게는 확연히 달랐다. 친구는 관계를 맺는다. 대화를 나누고, 추억을 쌓고, 때로는 기대와 의무를 만든다. 하지만 순례자는? 순례자는 자신의 길을 걷는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속도로 걷는다.

카스트로헤리츠까지 27.3km를 걸으며 나는 계속 생각했다.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이들과는 몇 시간을 함께 걷고, 어떤 이들과는 며칠을 함께 걷고 같은 알베르게에서 보낸다. 우리는 웃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서로의 힘듬과 발상태 그리고 물집잡힘을 걱정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를 만나고 친구가 되기위해 이 길을 걷는 게 아니다.

우리는 순례자다. 각자의 내면의 이유를 품고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들이다.

 

카스트로헤리츠로 가는 길

 

카스트로헤리츠(Castrojeriz)에 도착.

27.3km의 긴 여정 끝에 카스트로헤리츠에 도착했다. 발은 무겁고 어깨는 쑤셨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오늘 묵을 곳은 알베르게 로살리아(Albergue Rosalia). 이곳은 모두 1층 침대로 구성되어 있어서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니, 여느 알베르게처럼 다양한 국적의 순례자들이 모여 있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 있지만, 각자의 세계 속에 있었다.

 

치료를 거절한 이유

알베르게 한쪽에서는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의사가 자원봉사로 순례자들의 발을 돌보고 있었다. 물집이 잡힌 발을 정성스럽게 치료하고, 깨끗한 붕대로 감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을 본 동행 루프가 말했다. "의사선생님 내친구 아모스의 발도 좀 봐주면 좋겠어요." 나의 발도 긴 여정으로 발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모스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나는 그 순간 길에서 만난 순례자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순례자"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때로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 그것이 순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물집도, 고통도, 불편함도 모두 이 여정의 일부다.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우리는 순례자가 아니라 그저 여행자가 되어버린다.

루이스의 천장 이야기

저녁이 되자 순례자들은 하나둘 자리에 누웠다. 루이스는 자신의 침대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상한 말을 했다.

"천장을 봐. 저 나무들이 엇갈려 있잖아. 저렇게 되면 기운이 흩어져서 잠을 편하게 잘 수 없어."

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확실히 나무 들보들이 불규칙하게 교차해 있다.  그저 예민한 성격인지 모르겠지만, 루이스는 진지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많다. 각자가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나눈다. 우리는 그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들을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의 생각을 존중한다.

 

공립 알베르게에서 온 한국인들

저녁 식사 시간, 공립 알베르게에 머물던 한국인 두 분이 우리가 있는 알베르게 로살리아로 찾아왔다.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서였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반가움이 조금 다르다. 우리는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하지만, 동시에 각자의 경계를 존중한다.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 한다.

"어디까지 걸으셨어요?" "내일은 어디로 가세요?"

감정을 나누기보다는 정보를 교환한다. 이상하게도 이런 거리감이 오히려 편하다. 

 

 

함께 걷고, 때론 혼자 걷는 순례자로서의 정체성

800km, 나를 찾는 여정

14일째를 맞이한 지금, 나는 이 길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조금씩 알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800km의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이것은 내면을 향한 여정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걷지만, 결국 혼자다. 아니, 혼자여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마주할 수 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친구가 아니라 순례자다."

이 말은 정체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경계를 긋는 말이 아니라, 순례자로서 각자의 걷는 여정을 존중하자는 말이다.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당신이 걷는 길과 내가 걷는 길은 다르다. 우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만, 각자의 이유로 걷는다.

 

순례자로서의 태도

카스트로헤리츠의 밤은 고요했다. 알베르게 로살리아의 1층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루이스의 말을 떠올렸다. 천장의 나무가 기운을 흩어버린다고?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순례길은 우리의 고정된 에너지를 흩어버린다. 일상에서 단단히 쌓아올린 자아, 익숙한 패턴, 습관적인 생각들. 이 모든 것이 매일 평균 27 - 30km를 걷는 동안 조금씩 흩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채워진다. 더 진실한 자신, 더 솔직한 감정, 더 명확한 목적.

내가 치료를 거절한 것도, 한국인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화한 것도, 모두 순례자로서의 태도였다. 우리는 도움을 주고받지만, 서로의 여정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각자의 물집은 각자가 감당해야 한다.

 

내일을 향하여: 계속되는 순례

14일이 지났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조급하지 않다. 오늘 아침 만난 순례자의 한 마디가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나는 이 길 위의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될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순례자로서 걸으면 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내 속도로, 내 이유로.

카스트로헤리츠의 밤하늘은 맑았다.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났다. 각각의 별은 혼자 빛나지만, 함께 밤하늘을 수놓는다. 우리 순례자들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혼자 걷지만, 결코 혼자가 아닌. 순례자로서 같은 길을 걷는.

내일도 나는 걸을 것이다. 순례자로서.


실용 정보: 14일차 구간 가이드

- 구간: 라베 데 라스 칼사스(Rabe de las Calzadas) → 카스트로헤리츠(Castrojeriz)
- 거리: 27.3km
- 난이도: 중상 (거리가 길고 평탄한 구간)
- 숙소: 알베르게 로살리아(Albergue Rosalia)
- 특징: 1층 침대로 구성되어 편리함

TIP:

  • 27km 이상의 긴 구간이므로 충분한 물과 간식 준비 필수
  • 발 관리에 신경 쓰며, 물집이 잡히지 않도록 예방이 중요
  • 다른 순례자와의 적당한 거리 유지가 장거리 순례의 지혜

마무리: 당신의 순례는 어떤 의미인가요?

산티아고 순례길 14일차를 마치며, 나는 하나의 진실을 깨달았다.

이 길은 친구를 만들러 오는 곳이 아니다. 자신을 만나러 오는 곳이다.

당신도 지금 어떤 순례의 길 위에 있지 않나요? 그것이 실제 산티아고 순례길이든, 인생이라는 긴 여정이든, 우리는 모두 순례자입니다.

함께 걷되, 혼자 생각하며 성찰합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되, 각자의 속도로 걸습니다.
그리고 정체성을 생각합니다.

당신은 친구(amigo)가 아닙니다.
당신은 순례자(peregrino)입니다.

Buen Camino! 🚶‍♂️


다음 편: 15일차 여정이 계속됩니다. 다음 목적지까지 걸으며 어떤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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